은교. 아, 한은교. 불멸의 내 '젊은 신부'이고 내 영원한 '처녀'이며, 생애의 마지막에 홀연히 나타나 애처롭게 발밑을 밝혀주었던, 나의 등롱 같은 누이여.
박범신, 은교 책 속에서.
자극적인 소재로 영화로도 많은 논란을 낳았던 박범신 작가의 장편 소설 은교를 보았다.
가장 감탄하며 보게 된 것은 역시 박범신 작가의 뛰어난 필력이다.
그가 시인 이적요가 되어 남긴 글들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산 노인의 글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.
이름만큼 고요하고 적막한 이미지를 주는 이적요를 잘 표현한 필체로 그의 이미지가 한결같이 유지되었다.
하지만 그런 잔잔한 노년 시인에게도 사랑과 욕망은 벗어날 수 없는 유혹이었는데,
바로 그러한 욕망,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것에 대해 아주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.
이적요의 은교에게 쓰는 편지,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서야 남기는 글들, 서지우의 일기, 변호사Q의 이야기가
교차해서 나오면서 세 남녀의 치명적인 삼각관계가 하나하나 드러난다.
70세를 앞둔 치명적인 사랑, 그리고 그 사랑을 욕망이라 생각하며 자책하는 시인, 적요.
질투와 절망에 빠져있는 그의 제자, 지우. 그리고 한 없이 맑은 적요의 처녀, 은교.
이 셋의 얽히고 섥힌 감정 관계, 그리고 제자 서지우의 죽음을 풀어나가는 그 후의 이야기까지
이 소설은 끝까지 각 캐릭터의 감정, 특히 사제관계인 두 남자의 복잡한 마음을 너무나도 잘 표현했다.
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접했지만 개인적으로는
영화에서의 에로틱한 장면과 적요와 은교의 만남에서 느껴지는 슬픔이 박범신 작가의 원작에서는 글로 은은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영화와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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